일본, '패전' 이 아닌 '종전' 이라고 주장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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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패전' 이 아닌 '종전' 이라고 주장하는 이유

공작새 0 28 18:34
글쓴이, 주은식 / 페이스북에서

일본의 2차세계대전 ‘종전’ 기억 방식과 종전조서의 의미

‘패전’이 아닌 ‘종전’이라고 주장하는 이유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군사적 패배를 맞이했음에도 이를 ‘패전’(敗戰)이 아니라 ‘종전’(終戰)이라 명명했다. 이는 단순한 용어 선택이 아니라, 전쟁의 기억과 국가 정체성을 재구성하려는 의도적 담론 전략이었다. 일본은 전쟁의 원인과 책임을 전면적으로 성찰하기보다, 전쟁의 ‘종결’을 평화 회복과 국가 재건의 출발점으로 묘사하며, 패배의 굴욕을 완화하고 국민적 일체감을 유지하려 했다.

전쟁 기억의 서사화 – 피해자 코스프레와 미화

패전 후 80년이 지난 현재, 일본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을 기억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가해자’로서의 역사보다는 ‘피해자’로서의 기억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전몰장병 추모와 후손의 성지순례

일본 정부와 관련 단체들은 전몰장병 후손들이 남태평양 전투지, 특히 파푸아뉴기니아 등지의 격전지를 찾아가도록 장려한다. NHK에서 일주일간을 추모특집으로 방송하는 이러한 기행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일본군이 현지에서 존중받았다는 서사를 형성하는 효과를 노린다. 예컨대 불시착한 폭격기 조종사를 현지 주민이 구출해 주고, 야자수에 가면을 조각해 선물한 것을 폭격수의 아들이 들고가서 현지 주민들에게 보여주면서 감사를 표하는 장면의 일화는, 일본군의 점령이 폭력 일변도가 아니었다는 인상을 부각시킨다.

원폭 피해자 증언의 확산

젊은 작가들을 동원해 원폭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후유증과 삶의 상흔을 기록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 사망자 310만 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마치 일본이 전쟁의 주된 피해국인 양 인식을 확산시킨다. 그러나 이는 일본이 아시아 각국에 가한 침략·학살·강제동원의 역사적 책임을 흐리게 하고, 피해자-가해자 구도를 재편하는 일종의 ‘기억 정치’이고 용의주도한 기획이다.

종전조서의 담론 분석

히로히토의 ‘종전 조서’는 일본의 전후 역사 서술의 기초가 되었으며, 그 언어와 논리는 패배 책임의 회피, 전쟁 목적의 미화, 피해자 이미지 형성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담고 있다.

전쟁 목적의 정당화

조서에서 천황은 “제국의 자존과 동아의 안정을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고 주장하며, “타국의 주권을 배격하거나 영토를 침략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한다. 이는 명백히 침략전쟁의 본질을 부인하고, 전쟁을 방어적·해방적 성격으로 포장하는 역사 왜곡이다.

패배 책임의 모호화

전황 악화의 원인을 ‘세계의 대세 불리’와 ‘새로운 잔혹한 폭탄’(원자폭탄)에 돌린다. 즉, 일본의 군사적·정치적 오판이나 침략정책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외부 환경과 적의 무기에 책임을 전가한다.

자국민 피해의 강조

전몰자와 유족, 전상자, 재산 피해자의 고통을 장황하게 언급하며 국민적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조서에는 난징 대학살, 위안부, 강제징용 등 일본이 타국 민간인과 군인에게 가한 참상에 대한 반성은 단 한 줄도 없다.

국체 수호와 사회 통제

“국체를 수호”한다는 문구는 전후에도 천황제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또한, 국민이 ‘격한 감정’을 억제하고 ‘사단’을 일으키지 말라고 경고하며, 패전 후 혼란을 억누르고 국가 권위를 지속하려 했다. 특히 종전조서 가운데 전율에 가까운 말은 “시운이 흘러가는 바 참기 어려움을 참고 견디기 어려움을 견뎌 이로써 만세를 위해 태평한 세상을 열고자 한다.”는 말이다.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것은 참는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야 한다는 말은 일본인의 의식속에 전승되고 있다.

일본식 전쟁기억이 초래하는 문제

일본의 ‘종전’ 담론은 국제사회와 주변국과의 역사인식 갈등의 근원이 된다. 이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낳는다.

역사 책임의 희석

일본의 침략과 전쟁범죄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는 태도는 피해국과의 화해를 어렵게 한다. 잔학한 폭탄을 얻어 맞은 것이 전쟁을 야기한 책임때문이고 천황제 존속을 위해 포츠담 선언을 거부한 이유를 교묘하게 비틀고 있다.   

피해자-가해자 구도의 전도

일본인 피해 서사만을 강조하면, 아시아 전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과 식민지 지배의 기억은 주변으로 밀려난다.

국내 정치적 이용

종전 기념과 전몰자 추모 행사는 종종 우익 정치세력이 애국주의를 고취하고 군사대국화 담론을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오늘도 일본 수상과 각료들은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보내고 있고 일부각료는 참배하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과연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의식을 완전히 불식했는지 주변국들에게 의심을 야기하는 근원이 되고 있다.

‘종전’에서 ‘패전’으로의 인식 전환 필요

히로히토의 종전조서는 당시 일본이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싶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종전’이라는 언어는 패배의 치욕을 완화하고, 전쟁 목적을 미화하며, 전후에도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유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 방식은 일본이 가해자이자 책임 당사자라는 역사적 사실을 흐리게 만든다.

80년이 지난 지금, 진정한 평화와 동아시아의 신뢰 구축을 위해서는 일본이 ‘종전’이 아니라 ‘패전’을 직시하고, 전쟁의 본질과 범죄에 대한 명확한 반성과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피해자 서사와 가해자 서사가 균형을 이루는 역사 기억만이, 과거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과거를 묻어두고 미래를 위하여 일본과의 화해나 협력을 원하면서도 이러한 2차대전의 종전과 패전에 대한 인식이 일본인의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마음)가 다르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된 일본을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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